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문단 편집) === 미국의 반응 === 미국의 해군장교들은 군축조약의 진정한 승리자는 일본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예산을 타낼 핑계가 생겼으므로 같이 건함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태평양 지역에 있던 미국 식민지인 [[필리핀]], [[괌]], [[웨이크섬|웨이크]], [[미드웨이섬|미드웨이]]에서 [[요새]] 공사를 중지시킬 수 있었고, 어쨌든 일본은 모든 종류의 군함들을 망라한 총배수량이 미국 대비 5할도 안 되는 판(전함만이라면 6.7할)이라 타국과는 달리 대규모의 함선건조가 조약 내에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와는 별도로, 미국은 협정 외적인 거대한 전리품을 손에 넣었다. 미국은 '영일동맹이 유지된다면 조약에서 결정된 건함 비율이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들어, 조약에 조인하는 조건으로 영국 측에게 영일동맹의 종료를 요구하였다. 영국 측 역시 군축이 매우 절실하였고,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효용성이 떨어지는 반면, 군축으로 평화 기조가 유지된다면 동맹 자체도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이 되므로,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한다. 이 밀약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일환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으나, 표면상으로는 워싱턴 해군 회의 기간 동안에 공개적으로 진행된 회의[* 기타 단락에서 설명하고 있다.]였기 때문에 일본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이 무츠를 지키기 위해서 계산했던 모든 것들이 이 한 방으로 싸그리 어그러지게 되고, 일본만이 조약의 유일한 패배자로 남게 된다. 더 길게 보자면, 2차 대전의 양대 세력인 영미 연합군과 추축군의 구도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